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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통의 훈련5 [마 9:9] / 인생훈련과정
    인생훈련반 2022. 9. 26. 12:07

     

    New Zealand / West Side                                         Moru 

     

    고통의 훈련5 

    [ 9:9] 

     

    / 인생훈련과정

     

    / By Priscilla

     

     

    2002/04/24

     

     

    '죤 밀톤'은 시력을 완전히

    잃은 심각한 고통의 흔련을 겪었다.

     

    명석한 두뇌와 재능을 타고 났으며

    당시 그 누구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았으며 신령한 감각이 뛰어났던

    그는 44세때 소경이 되었다. 

     

    당시 영국 왕정과 공화정 사이에

    피나는 투쟁을 겪고 있었다.

     

    그는 한동안 공직에 계속 근무했지만

    눈이 멀었다는 사실이 공직 수행에 있어

    치명적인 장애물이 되었다.

     

    그는 이런 고난 중에서

    자신의 잔인한 운명을 놓고

    신음하거나 어두운 인생 때문에

    비통해 하는 대신 불후의

    명작들을 써냈다.

     

    ‘실낙원’(Pradise Lost)

    ‘용사 삼손’..등이 그 당시에

    그가 쓴 작품들이다.

     

    그는 소경이었으나...

    낙원을 볼 수 있었고

     

    그후 세대에서 세대로 오는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낙원을

    볼 수 있게 하였다.

     

    그는 고통을 통해

     낙원을 바라 보았다.

     

    나라를 섬기는 것보다 더 귀한

    봉사를 요구한 자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이셨다. 

     

    이에 여기에 

    “소경이라면..."이란

    다음의 그의 시를 소개한다. 

     

    “소경이 되어서...

     

    이 어둡고 젊은 세상에서

    인생의 절반도 가기 전에

    어째서 빛을 잃게 되었는지
    생각해 본다.

     

    나는 눈을 가지고 조물주의

    책망을 받지 않으려 최선을 다해

    봉사하고 싶지만 죽으면 감겨질 눈!

     

    살아서 반짝이는 하나의 달란트! 

    그러나 내갠 소용 없이 붙어 있다.

     

    “낮에 일을 시키시면서

    빛을 거두시나이까?“ 하고

    부드럽게 여쭈어 본다.

     

    그러나!

    이 원망을 막는 인내가 이르되

    “하나님은 인간의 일이나,

    인간재능을 요구 하시지 않는다.”

     

    자신의 멍에를 묵묵히 지고 가는 자”

    그가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

     

    그는 왕과 같은 자태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명령만 기다리며 -쉴새 없이

    땅과 바다를 지나는 수 많은 신하들 서서

    기다리는 자도 그를 섬긴다.”

     

    / By 죤 밀톤

     

    “낮에 일을

    시키시면서 빛을 거두시나이까?”

     

    '죤 밀톤' '퓨리탄'(청교도)의 투지와

    인내 그리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공의와

    긍휼에 대한 불굴의 신앙으로써

    다음과 같이 싯 귀를 맺었다.

     

    “서서 기다리는 자들도 그를 섬긴다.“

     

    이에 죤 밀톤 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의 모든 교통은

    신체적인 것만은 아니다.

     

    신체의 결함이

    우리 정신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심하면 정신까지도 파괴 시킬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죤 밀톤' 처럼 그 결함을 통해

    더 유익한 사람도 될 수 있다.

     

     

    예화1: 모세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는

    이미 노인이란 결함이 있었다.

     

    '모세'

    혈기방장한 40세에 망명하여

    사막의 목자로 오랜 세월

    무명 생활을 했다.

     

    화려한 바로의 궁정에서

    미디안 광야로 옮겨졌어도

    그는 적응 할 수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은퇴 할 나이에

    그는 무려 80세에 그는 가시떨기

    나무 불꽃을 보며 자기 민족의

    구원자로서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이 부르심을

    거절할 명분과 이유가 있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출 3:11)

     

    과연 그의 말대로

    누가 무명한 늙은 이를 지도자로

    삼아 거칠고 무식한 12지파를

    민족으로 형성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낼 수 있겠는가?

     

    그는 인간적인 결함에도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를 원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을 것이나

    그런데 아이로니칼하게도 하나님은

    그러나 다른 이가 아닌 바로 

    그를 지명하고 원하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출 3:12)

     

    예화2: 세리 마태

     

    그는 사회적 천민들에게 편견과 조소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세리라는 직책은 당시 팔레스틴에서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드는 최하급 천민 이었다.

     

    마태는 유대인들이 증오하는

    로마인의 부하로서 자기 민족에게는

    반역자요 매국노였다.

     

    제정 로마의 꼭둑각시요 반역자로서

    죄인 취급을 받았던 자였던 세리 마태!

     

    그래서 마태의 집이나 혹 다른 곳에서

    주님의 제자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하고 질문을 하였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마 9:11)

     

    성화 ‘예수(Jesus)’에도

    그 모습이 표현되듯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이 질문에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성경 말씀의 본문을 보면

    '마태'는 사회적인 오명에

    결코 굴하지 않았다.

     

    그가 세관에 앉아 있을 때,

    “나를 따르라!”시는 주님의

    축복의 음성을 들었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마 9:9) 

     

    그는 사회적 지위의 결함이나 가문,

    여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자신을 향하여 쏟아지는 질타외

    사람들의 편견어린 말과 비난에도

    전혀 개의치도 않았다.

     

    따가운 화살에도 오히려 사회에서

    버림을 받은 자는 구세주의 선택에

    의해 그의 종이 되었다.

     

    그뿐인가?

     

    그는 후에...

    놀랍게도 신약 성경 가운데

    ‘마태복음’의 저자가 되었다.

     

    생명의 구주가 버림받은

    세리의 봉사를 기뿌게 받으시리라고

    그들 중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아무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를 제자중

    한 명으로 받아들이셨다.

     

    할렐루야!

     

    여기에 고통의 훈련이 있다.

     

    한계에 따르는

    제한성과 결함을 인식하면서도

    무릎쓰고 일어나 불가능에 도전하는

    훈련이 바로 ‘고통의 훈련’이다.

     

    실망과 고통에

    굴복하는 것이 패배의 길이다. 

     

    시력이 약해지고 기력이 쇠해지며

    친구들이 떠나고 원수들이 사나우며

    시시각각 방해물이 가로막고

    고통이 괴롭혀도...

     

    이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주님을 앙망하며

    신앙으로 훈련을 받은 자! 

     

    다시말해 피눈물 나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 고통을 겪은 이를

    하나님은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자! 

     

    신체적, 인종, 사회,

    인격적 결함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신분 고위를 막론하고

     

    주님의 부르심에 상황을 따지지 않고

    즉각 일어나 주님을 따르는 자는

     

    ‘존 번연’‘천로 역정’에 나오는

    순례자와 함께 고통의 언덕을 걸어 올라가

    화려한 궁정에 입성하여 창문을 열고

    타오르는 태양의 찬란한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할렐루야! 

     

     

    기도

     

     

    고통을 통해 주님 오늘 닮아가게 하시고 

    주님이 우리를 사용하기를 원하실 때

    다만 순종하게 하소서!

     

    - 글맺음-

     

     

    20222/09/26

     

    / By Prisc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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