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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세계 선교의 혁명’ / 전문인 선교 훈련 (GPTI) 과제물 (1993)전문인선교 2022. 9. 3. 10:22
New Zealand / West Side Moru
‘다가오는 세계 선교의 혁명’
/ 전문인 선교 훈련 (GPTI)
과제물 (1993)
/ By prisclla
1993/05/22(토)
하나님의 선교 방법은
언제나 재생산을 필요로 한다.
‘다가오는 세계 선교의 혁명’을
읽게 되면서 먼저 느낀 것이 있다.
‘요하난' (k.p. Yohannan)은
인도 청년으로서 개인적으로 볼 때,
연약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서
수줍음을 잘 타는 자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동역자들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의
사역을 아루기까지 활동이나
기관에 참석하는 가운데 진정한 의미의
‘바울’을 만나 그의 삶에 변화를 받고
그 눈을 떠사 어두움애 처해 였던자가
어머니의 간곡한 기도로 빛을 발견하고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되었으며 죄사함에서 벗어난 자가 되었다.
더우기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어 거룩하게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될 것인 일에 종사하게 되었던
-‘디모데’가 되었으니! (행 26:18)
이 ‘디모데’를 통하여 많은 ‘디모데’가
나올 것을 기대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는 사람을 알고 예수님을 만나
극적으로 변화받은 자신 처럼!
자신이 경험을 통해 쓴 이 책을 통하여
서구의 수천 그리스도인들이 같이
책을 대하게 되며 누구나 감동받고
변화되어 지기를 소원하며 먼저
머리말에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몸된 교회의 희생을 통하여
자국인 선교사들이 훈련되고 파송되어
아시아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
오는 것을 같이 보기 원한다고 소망한다.
그는 말한다.
"아직도 불행한 가운데 처한 자들 중에
예수의 일름조차 모르는 수억의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사랑으로
고동치는 하나님의 심장을
보고 듣게되며 변화받아
언젠가는 다른 믿음의 소유자로서
경주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한다."
...라는 간곡한 메세지를 책에서
전달하고자 했다.
‘어떤 이는 행운을 타고 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Some are born under the
lucky stars, but others are not.)
야벳의 후손들은 어찌된 연고인지
창대한 유산을 기업으로 받았다.
그들은
탄생하면서 부터 축복이 주어졌기에
그것에 대한 감사함을 모른다.
때문에 어려운 처지에 속해 있는
극빈자들에 대한 타문화권을 이해할 수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잘못이 없는 지도 모른다.
다만 그 방면으로 경험되지 못하여 미숙한 것이다.
무지한 그들에게도 복음이 성하여지고
축복이 오자 성령의 폭발적인 힘으로
다양한 방법, 다양한 임무를 띠고
디아스포라해서 전 세계에
흩어졌으나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기에
그들은
식민지적 사관과, 하나님에 대한
본질에 약하고 미성숙했기에
또 다른 문제들을 야기시켰고...
결국은 제 3제국-식민지화된 나라마다
들어간 전통적 선교사들이 실패의
고배를 마셔야했던 것은
진정한 복음을 위해서 현지인을 위하여
돕고자 열망했던 무리 중에 더러는 풍토병으로,
더러는 무서운 핍박으로, 더러는 참수 당하고
쫓겨나고 몰매를 맞고 화형을 당한 ...등
순교자적인 선교사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선교의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이 속한 나라에서 이질감을 느끼는 부분
(문화충격)을 아이로니칼 하게도
동질감을 느끼지 않게 경계하며
식민지적인 자세를 고수하는 영적
아버지가 되려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영적 고아원 처럼
자립심을 주기 보다는
이점을 경계하면서 끝끝내 자신들이
아버지 역할을 하려했기에...
바로 그점이 문제점이 된 것이다.
또한 선교의 본질인
복음을 중거하는 것이 아니라,
2차적인 문제 병원시설과 학교(교육)
...등등의 사회사업 으로서의 기능만
전개 시켰을 뿐
제3제국이 독립하게 되어
그들이 쫓겨 나갔을 때,
결국 남은 것은 덩그라니 남은 건물과
그리스도인이 아닌 자들로 활동 할 수 있는
복지 시설로서의 직능 밖에는 아무
구실을 하지 못한 점 ...등이
문제로서 제시 되어졌다.
작가는 자신의 조국을 위해 유사집단인
아시아(제 3제국)을 향한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남은 생을 참된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한 문제로
많은 고심을 하던 중에
영적 바울들인 '피어스'(선명회 설립자) 와
‘학개’를 만나게 되고 그들에게서 불가능을
용납하지 않는 믿음과 의지를 배웠다.
‘밥 피어스’와 ‘학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한계가 없이 모든 것을 세계적인
차원에서 보았으며
그들에 의해 작가 ‘요하난’은 과거에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이상을 갖고(vision)
높은 차원에서 행할 수 있었다.
결국 ‘학개’의 도전을 통해 그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을 알게 위해
인도를 떠나게 되었다.
그는 자기 중심적이 아니고
세속적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남은 생애가
되어야한다는 것을 깊이 통감하며
자신에게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고자 노력했다.
이 과정 중에서 선교단체를 통해
‘기젤라’라는 독일 여성을 반려자로
만나게 되었을 때...
그녀가 서구인 임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풍습과 문화를 이해하기위해
노력한 여성임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인도의 고유의상인 사리(sari)를 입고
사역게 동참했고 인도의 한 가난한 청년과 결혼할
각오를 지닌 하나님 앞에 헌신된 자매였음을
책을 읽는 가운데 느끼고 그 믿음에 감동을 받았다.
결국 요하난은 서구 문명세계에 접하면서
23세로서 목회 사역의 일선에서 목사로서
사역을 감당하기도 했으나...
하나님의 쓰시고자하는 의도대로 중개자로서
또는 교량의 역할로서의 선교를 해야할 책임을 느끼고
그가 서구사회에서 느낀 점들을 예리한 눈으로 보고
하나님의 사역을 본질적으로 감당해 나가야하는
동역자들을 위해 헌신하게 된 경위를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그에 의하면
“아직도 선교하면 식민주의 선교를 연상한다.
제 2차 셰계대전으로 성령이 종말을
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성령이 역사하여
아시아, 아프리카...등지에서 거대한 선교사 군대가
일어나면서 이 개념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 겸손한 무명의 개척자들은 십자가의 기치를 높이 들고
식민시대 선교단체가 떠나버린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이제 앞으로 지양해야할 선교 방법은 자국인 선교 운동
(The native missionary movement) 이다.
이들은 문이 닫힌 나라에서 다른 방법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들을 수 없는 수백만의
영혼들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 제 3의 물결이 세계 선교의 새로운 의미를
주면서 온 세계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양식에 도전이 되고 있다.
수많은 교회와 개인이 자국인 선교사들을
보내며 믿음의 전선에서 기도하고
지원하게 되었다.
이제 자국인 선교에 대한 오해가운데 그 하나는
서구 선교사들의 역할이 변하고 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자국인 선교의 책임감에
대한 기준 문제인데 이것은 분명히
알아두어야 한다.
첫째, 서구 선교사들을 미전도 지역으로
옮기거나 자국인 선교사들을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현명하다.
-예컨대, 특별한 기술 분야에서는 아직도
서구 선교사들이 요구 되어 진다.
(성경 번역, 방송 기술분야...등 이다.)
둘째, 자국인 선교사들도 다른 사역자들과
똑 같이 책임을 져야한다.
따라서 자국인 선교사들은 정확하고
성경적인 기준을 세워놓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실제로 자국인 선교지도자들은 멀리 있는
외국의 이사회보다 더 정확히 자신들의
사역을 관찰할 수 있다.
그들의 문화상황 가운데 엄격한 운영,
더 효과적인 정책, 다 실질적인 기준을
세운다.”는 것이다.
‘요하난’ 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식민주의적 지배 방식은 끝나고
자국인 선교 지도자들애게 재정 감독을
맡기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것은 결코 엉터리 청지기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그는 주장한다.
책을 대하며
뭉클 하는 감동으로 울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 이제 그의 책을 덮으면서
때로는 지나치게 섬세하고 예리한
비평과 그의 일말의 강한 주장이
편견에 치우치는 것이 아닐까?
(민족애의 발로?)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우리나라역시 교회의 성전 짓는 일이나
낭비하는 추세나 세속적인 사역들,
잘못 쓰여지는 헌금과 선교비의
유출...등을 지적 할 때 마다...
선교 1세기를 맞으며 부각되는
사회적 기독교적 윤리관,
또는 선교의 동향이,
그가 오늘 책에서 우려하듯
선교 사업에 흐르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따라서 ‘다가온 세계선교의 혁명’을
기대하면서 새로운 선교관의 확립이
절실히 요구 되어 진다.
바로 그 점에
동감이라고 여기는 바이다.
시대적 사명을 느끼며 21세기의 주자로서
뛰어야할 우리는 선교의 동향을 파악하고
하나님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본다.
이를 상기하면서 새로운 각오로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선교사역에 동참하면서
영적인 바울들과 디모데를 만나고
선한 영향을 받으며 사역을 옳게
분변해 나가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서로 한 성령 안에서 선교에 동참하는
작업과 전략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강한 도전 의식을 품게 되었다.
- 글맺음 -
2022/08/18
/ By Prisc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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