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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6 [요 3 : 16-17] / 프리실라의 제자양육(초급)제자훈련반 2021. 1. 31. 17:54
NewZealand / West Side Moru
하나님의 사랑6
[요 3 : 16-17]
/ 프리실라의 제자양육(초급)
/By Priscilla
지난 2주에 걸쳐 먼저
우리는 제 4과에서
-“사람이란...
우리가 누구인지?”
-"인간은 하나님의 속성과 형상을
닮은 특별한 존재”라는 것과
그 “정체성(Identity)에
대해 공부를 했다.
그리고 이어서 지난 주에는
제 5과에서 -“죄된 인간에 대해?”
첫 아담을 통해 죄가 들어온
경위와 죄된 인생에 대해
공부를 했다.
이번 과제 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6가지로
살펴 보기로한다.
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오늘의 주제의 핵심인
-분문 말씀을 보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 : 16-17)
하나님은
사랑의 근원이시다.
성경은 한 마디로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이다.
때로 당신의 자녀가
자신의 갈 길을 마음대로
정하여 당신을 떠나
그릇 행할 때에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그 자녀를 사랑
하신다는 확증을
주시려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인간의 속성은
하나님의 은혜를 쉽게
잊어 버린다.
우리는 하나님께 갈급하거나
힘들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며 눈물로 호소한다.
그러나 막상 응답이 오거나
문제가 해결되면 더 이상
연연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도 후에 자신이
어떤 기도를 올렸는지
잊어버리거나 관심을
기울이지 조차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다음뫄 같이
말씀하신다.
여인이 젖 먹는
자식을 잊지 않듯이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듯이...
(사 49 : 15)
사람들은 혹시
하나님을 잊을 지라도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영원히 나를 잊지 않으
신다는 것을 잊지 말자.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죄악으로 인해 심판을 받고
지옥의 형벌을 받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신다.
그러므로 인간을
멸망에서 구하시고자
그런 이유로 적극적인
구원의 계획을 시작 하셨다.
2.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자녀된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인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 알아야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멸망치 않고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딤전 2 : 4)
(예 1 : 천국에 다녀
온 이의 간증)
극적으로 살아 온 이가
말하기를 천국에 갔을 때
어떤 방에 가니 우편 번지수가
불분명해서 되돌아온 임자가
없는 소포물이 방 한가득
수북히 쌓여 있더란다.
궁금해서 안내하는
천사에게 물어보니
하나님의 응답을 원하여
갈급히 요청 했다가도
응답이 더디다고
크게 실망하고는 더 이상
끈기있게 기도하지 않고
그 기도의 자리를 떠나는
이가 많다고?
막상 가브리엘 천사가
소포와 기쁜 소식을 가지고
그 자리에 막상 당도하면
기도를 요청하던 많은
사람들이 없어서
그렇게 못 전한
하나님의 응답 소포가
수북히 많더라는
얘기였다고?
이 예화처럼 어떤 이는
하나님의 응답과 주의
약속이 실현되질 않고
왜 이리 더디냐고
이를 참지 못하고 쉽게
자리를 떠나거나 실망하거나
불평을 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벧후 3 : 9)
3. 하나님은 구원 역사에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
구원 역사의 일을 도모하려는
큰 3대 산맥이 있다.
이는 죄와 심판과 형벌이다
에덴동산에서
날마다 하나님과 일정한
시간에 교재를 나누며
소통했던 아담!
그러나 그는 마귀의
시험에 걸려 교만과
불순종으로 하나님 앞에
크게 범죄했고
에덴 동산에서 쫒겨남을
받는 자로 죄와 형벌과
심판에 놓이게 된다.
아담은 범죄 후
자신의 지은 죄를 깨닫고
벌거벗은 몸을 수치로 알고
나뭇 잎사귀를 엮어 옷을
지어 입었다.
시간이 흐르자 잎사귀가 말라
더 이상 수치를 가릴 수 없어
그는 나무 그늘에 숨었다.
하나님은 아담과 늘 만나셨던
장소에 친히 찾아 오셔서
그리고 말씀하셨다.
그가 범죄하여 눈이 밝아지자
벗은 몸이 수치스러워 낯을
가리고 숨어있는 것을
미리 아시고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찾아와 물으셨던 하나님!
당신에게 불순종을 했기에
버림받을 그가 되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한
인간의 수치를 드러낼
나뭇잎 대신...
마치 희생 제물을 상징하듯
짐승의 가죽 옷을 입혀 범죄한
인간의 허물과 수치를 가리워
주셨던 하나님!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 오셨다는
것을 반드시 알고 기억하라.
(예 2 : 찬송가 )
1878년 1월에 스테빈스에 의해
작곡되었던 노래는 오늘의 과제와
딱 맞는 내용이 들어있다.
“친구되신 예수”(찬 89)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날 먼저 사랑했네
그 크신 사랑 나타나
내 영혼 거듭났네
주 내 맘에 늘 게시고
나 주의 안에 있어
그 포도비유 같으니
참 좋은 나의 친구
내 친구되신 예수님
날 구원하시려고
그 귀한 몸을 버리사
내 죄를 대속했네
나 주님을 늘 믿으며
그 손을 의지히고
내 몸과 맘을 바쳐서
끝까지 충성하리
내 진실하신 친구여
큰 은혜 내려주사
날 항상 보호하시고
내 방패 되옵소서
그 풍성한 참 사랑을
그 뉘가 끊을 소냐
잘 구원하신 예수님
참 좋은 나의 친구
예수님은 제자들과 더불어
공생애 기간동안 친히
친구가 되어 주셨다.
그러므로 그분과
우리와의 관계는
생명을 건 사랑의
관계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즉 오늘도 당신의 제자로
만들어 주시기 위해
우리를 지명하시고
부름을 받은 우리에게
역시 친구라 하신다.
당신을 믿음으로
좇는 자를 외면치 않으신다.
그리고 물어 보신다.
“네가 너를 부인하고
네게 주어진 십자가를
달게지고 나를 따라
오려느냐?
이 세상에 의인은 없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 : 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롬 3 : 10-18)
하나님이 아들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요 3 : 17)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음성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 시키려 왔다.”
(눅 5 : 32)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인애 하시며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에게 담당 시키셨다.
(사 53 : 6)
“보라 세상 짐을 지고
가는 어린 양이로다.”
(요 1 : 29)
(예 3 : 양의 성품)
우리는 흔히 양은
매우 순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양은 몇가지
성품이 도드리진다.
첫째, 고집이 세다
둘째, 지저분하다.
그러므로 주기적으로
양털도 깎아주고
씻어도 주는 등..
늘 한시라도 돌봐주지
않으면 안된다.
둘째, 리더 격인 한 마리가
무리에서 이동을 하면 무리가
맹목적으로 의심없이 따라간다.
그러므로 우두머리 양을
잘 인도하는 것이 목자의
책임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리더는
아주 중요하고 추종자들을
잘 양육하고 인도 해야한다.
한 때 저주 아래 있던 우리!
예수님의 사랑으로 대신
죄를 탕감받아 의인의 반열의
자리에 서게 된 우리!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하고 그리하여
나의 구세주로 영접함으로
바로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았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우리가 되었다.
(갈 4: 6)
짐승을 희생시켜
가죽 옷을 입혀 주셨던
하나님의 사랑을 창세기에서
보여 주셨듯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청해서 저주를 받은 바 되셨다.
그리고 율법의 저주에서
마침내 우리를 속량해 주셨다."
(갈 3: 13)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죄의 댓가를 지불한 것을
상직적인 모형으로
친히 보여 주셨다.
양처럼 인생의 방향을
모르고 지저분하고 고집이
세고 죄성을 지닌
불완전한 죄인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값 없이 의인의 반열에
들어가게 되었다.
(롬 3 : 23-25)
하나님은 화목제로
희생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원수 되었던 관계를
청산해 주시고 죄 없다 하시며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
그리고 사망을 철폐해 주시고
더 이상 심판에 따르는 형벌과
책망할 것이 없는 거룩하고 흠이
없는 관계로 세우게 하셨다.
더 나아가 마침내 의의 옷을
입혀 주심으로 의의 반열에
서게 해 주셨다.
"그러므로 믿음의 터 위에
굳건히 서라 세상 풍파에 미혹되거나
흔들리지 말고 복음의 일군으로
든든히 서라. "
(골 1 : 19-23)
한편, 이렇게 하나님과
관계가 막힌 인간 관계를
회복 시키고자 하나님은 형벌에
처한 인간을 향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아 주셔야 했다.
그리고 인간의 죄를 해결할
길이 없자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성육신(incarnation)
하게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순종으로
예비된...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그 길을 열어 주시고자
인간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며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을 보여 주셨다.
인간이 값 없이 누리는
은혜는 결코 값싼 은혜
(cheap -grace)가 아니다.
바로 이 부분을 우리는
간과하거나 착각하면 안된다.
예수님은 이와같이 기꺼이
순종하심으로 인간을 위한
-어린 양의 희생으로 친히
속죄 제물이 되어 주셨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는 죄 값을 지불받고 청산하여
마침내 하나님께서 어두움의 세력에서
우리를 극적으로 건져 주시고
비로서 자유가 주어졌다.
얼마나 어렵게 되 찾은 자유와
하나님의 크신 은혜이런가?
4. 그렇다면 우리가 원치 않는
죄를 없애는 길은 무엇인가?
우리가 죄를 없애는 길은
어떤 노력이나 행위가 아니다.
(예 3 : 영화 “미션” )
인간이 범죄를 져지르고 나서
용서를 받겠다고 인간의 의지로
해결하는 것은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다.
스스로를 밧줄을 묶어 육신을
괴롭히고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
이고 다니며 고행하는 행위
또는 인간의 본능적 죄성을
지닌 욱신의 정욕을 없애려고
스스로 채찍으로 자신의 몸을
때리거나 행위는 결코
하나님의 뜻과도 상반되고
이런 생각과 방법은 하나님께서
좋아하시지 않는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제어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자.
고로 명심하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은 결코
우리의 행위가 의롭고
선해서가 아니다.
자유함을 얻은 뒤
더 반복되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여기서 우리가
성령님의 법 안으로 기꺼이
들어갈 필요가 있다.
우리가 조상의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 된 이유는
없어질 것이 아니다.
바로 성령께서 도와주심으로
흠없는 어린 양같이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이루워진
것이다. (벧전 1 : 18-19)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 3 : 26-28)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결코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를 알고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을 누리고
우리의 머리 되신 예수님을
뒤 따르는 예수님의 참 제자요
충성스런 일군이 되도록
(갈 2 : 16)
성령께 간구하는
우리가 되자.
(예 4 : 큰 바위 얼굴)
빵과 촛대를 훔쳤다고
이마에 죄인(sin) 이란
“S” 낙인이 찍힌 사내는
감옥에 가서 거의 반 평생을
살다가 모범수로 기간보다
일찍 출감되었다.
그는 어느 마을을 지나가다가
그 마을이 평안하고 좋아 그곳에
정착하고 일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하며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 말씀대로 성실하게 살며
주변 사람들을 극진히
도와 주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 처럼 사랑하라”를 실천한
그가 세월이 흐르자 어느새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케하는
사람이 되었다.
결국 드디어
그 마을을 관할하는
시장으로 천거가 되었다.
언제나 지워지지 않는
이마에 쓴 낙인 (sin)은
어느새 사람들에 의해
“성자(Saint)”... 로
불리어지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5.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 일까?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하나님께로 낯을 돌려
돌아와도 여전히 죄성은
지워지지 않는다.
성화(sanctification)란
어쩌면 한번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받았다손처도
죄성은 여전히 우리의
심령에 남아 있다.
더군다나 우리는
자범 죄(sinful will)를
그때그때 회개로 그 합당한
열매로 주님께 아뢰며
고치려해도
여전히 우리는
육신을 입고 있기에
날마다 무거운 죄짐을
질 수 밖에 없다.
(예 5: 나무에 한번
박히고 나면 못을 빼내어도
지워지지 않는 못 자국)
나무에 한번 박히고 나면
못을 빼내어도 얼룩이
지워지지 않는 못 자국처럼
우리는 의인이라고
칭함을 얻었어도 첫 아담이
불러온 -원죄(sinful nature)
로 인해 여전히 인간은
죄성을 지닌 죄인임에
변함이 없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옷깃을 여미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한다.
주님을 알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영접한 것은
단 일회의 회심이다.
그러나 그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일생 추구할
과제일 것이다.
더 나아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명을 가지고 사는 동안
행할 거룩한 작업일 것이다.
6. 오늘 부터라도 우리가
죄인임을 겸손히 시인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시인하는 자가 되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들인다면 당신은 더 이상
죄와 심판과 형벌과 사망에
처하지 않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구원 사역 안에서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힘 입어
거룩한 의의 옷을 입고
거룩한 반열에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종국적으로는
하나님의 권세를 지닌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으로
탈바굼하게 될 것이다.
(요 1 : 12)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 5 : 24)
사망에 처한 죄인된 인생에게
영생(eternal -life)을
주시고자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하나님!
이런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죄에서 심판에서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
하시기 위한 마음에서
출발된 것을 잊지말자.
자녀를 향한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의 그 진심이
어떠 하신지를 알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 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는도다
그의 행위를 모세에게,
그의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곧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시 103 : 1-18)
그러므로 전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본 받아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자.
그리고 내 이웃을 사랑하자.
그러므로 내 몸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여 우리의
혼신을 다하여...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택을 잊지 말고
성실히 살자.
-할렐루야!
아멘!
2020/12/15(화)
/By Prisc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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