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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장기244 / ‘라이프-러너’(Life -Learner) / 가족 공동체 안에서 가슴 앓이(신앙의 발자취1/1)라이프러너 2022. 3. 1. 13:26
NewZealand / West Side Priscilla
나의 성장기244
‘라이프-러너’
(Life -Learner)
/ 가족 공동체 안에서 가슴 앓이
(신앙의 발자취1/1)
/ By Priscilla
1993/09/21(화)
1978년에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 때 부터 지금까지 15년간을
시부모님을 모셔왔다.
내가 시집 오기 전 부터
시어머님께서는 편찮으셨고...
하루종일 거의 기동을 못 하셨다.
시아버님께서는 항상 시어머니의
곁을 지키며 한결같은 애정으로
시모에게 짜중 한번 내시지 않고
정성을 대해 살뜰히 보살펴 주셨다.
그리고 시부모님 곁에서
나의 주된 일은 두 분께서 드실
식사를 장만하는 것이었다.
대학 졸업 후에 교사로의 첫 임지가
성남시 성일 중. 고등학교였다.
교편을 잡고 4년이 지나던 해에,
내 나이 꽃과 같은 방년 26세 때.
내 생애 처음 경험하는...
어색하고 생경한 맞선 자리에서
그를 처음으로 대면하여 만났다.
그리고 나는 시모가 병환 중에
계시기에 급작스런 상황에
밀려 걷잡을 수도 없이
초 고속으로 3개월 만에
그와 약혼을 했고, 6개월 만에
부랴부랴 결혼을 하였다.
더우기 시부모님을 모시기 위해서
그간 4년간 몸 담았었던 교편직을
부득불 내려 놓아야만했다.
그후 가정에 묻혀 대가족
살림을 하는 여염집의 여인과
같은 평범한 삶을 살았다.
아이 둘을 낳아 기르고,
성장하는 것을 보노라면
세월은 쏘아놓은 화살 만큼이나
빠르기도하다.
나는 때로 편찮으신 시어머니의
등 뒤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가족 공동체' 안에서...
맏 며느리의 역할을
잘 감당하기엔 나는 아무래도
가당치 않다고!
더우기 시모가 분초마다 힘겹게 겪는
-극한 통증에서 오는 절망, 탄식, 고통,
슬픔...등이 한 차례씩 밀려 오면
그 아픔으로 인해 절규하며
흐느껴 우셨다.
나는 그시모의 처절한 외 마침과
통곡 소리를 들으며 그 중
어느 것 하나도 내가 해결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에...
나는 홀로 숱한
가슴 앓이를 했다.
- 계속 -
2021/12/06
/ By Prisc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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