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사랑의 사도 -요한 (John) / 폴의성경인물10
    앤의추천글 2022. 7. 28. 07:22

     

    New Zealand / West Side                                      Priscilla

     

    사랑의 사도 -요한 (John) 

    / 폴의성경인물10

     

     

    / By Paul

     

     

    1. 인적 사항 

     

     

    요한은 헬라어로 '요한네스'라고 하며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라는 의미입니다. 

     

     

    사도 요한은 갈릴리 벳세다 사람으로 

    세배데와 살로메의 둘째 아들로 

    그의 형은 야고보 였습니다. 

     

     

    그는 어머니 

    '살로메'가 예수님 어머니의 

    동생이었기 때문에 주님과는

    외사촌간의 관계 였습니다. 

     

     

    그는 25세경

    세례요한의 제자가 되었으나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중에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형 야고보와

    더불어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12제자중 예수님을 

    측근에 항상 따라 다니며

    섬겼던 세 사람 베드로, 야고보와

    더불어 함께 한 사람이었으며,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와 그의 형 야고보를 가리켜

    '보아네게'(우뢰의 아들)라는 별명을

    지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강림의 체험을 통하여

    성품이 바뀌어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는 유일하게 12제자중 순교를 하지 않고

    고난 중에서도 끝까지 살아나 성령님의 영감을

    깊이 받은 사도가 되어 요한 계시록 및 

    요한 1.2.3.서와 독수리 복음인

    요한복음을 썼습니다. 

     

     

     2. 주요 생애 

     

     

    요한은 갈릴리 바다에서 어업을 하던 

    세베대의 아들로 태어나 24세까지 

    아버지를 도와 어부 생활을 

    하며 살았습니다. 

     

     

    부요한 집안의 덕택으로 그는 

    그의 형 야고보와 더불어 젊어서 

    공식적인 교육기관인 회당에서 

    교욱을 받고 자랐으며, 

     

     

    예루살렘에도 체류하며 지냈던 

    관계로 보아 대제사장 가야바의 가족과 

    먼 인척관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A.D. 27년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A.D. 30년까지 3년동안 제자로서 주님을 

    섬겼습니다.(요18:15, 행 4:6) 

     

     

    그의 부친 세베대는 그 기간 동안에 

    죽은 것을 보이며 (마 20:20 이후로 안 나옴 )

    따라서 살로메는 예수님을 섬기는 일에 

    전념을 하며 지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두아들의 출세 부탁, 

    갈보리 십자가 현장에 참석,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찾아 갔음) 

     

     

    요한은 베드로와는 달리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 

    그 자리는 피하였으나 

     

     

    끝까지 쫓아가 제사장 가야바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던 베드로를 

    들여보내 주었으며 (요18:15)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도 

    그 자리에 어머니와 언니인 

    마리아와 함께 있었습니다.

     

     

    주님은 이를 보시고 자신의 동생들도 아닌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 하였습니다. 

     

     

    그후 그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집으로 모시고가

    그녀가 죽을 때 까지 봉양 하였으며 

     

     

    20 여년간을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교회를 지켰음으로 사도 바울은 그를 가리켜 

    교회의 기둥이라 불렀습니다. (갈2:9) 

     

     

    그는 주님의 모친이 돌아가신 이후에

    주변 지역을 다니며 선교 활동을 하였으며 

    각 지역마다 세워진 교회들을 감독하기에 

    편리한 장소로서 '에베소'를 택하여

    머물렀습니다. (A.D. 65-66 이후) 

     

     

    이는 그 당시 세계 각 지역으로 부터 

    많은 무리들이 모여드는 도시임을 

    감안하여 볼 때, 복음의 중심지가 

    될 수 있기 때문 입니다. 

     

     

    그는 A.D. 85년경

    요한 복음을 기록 하였으며 

     

     

    이어 A.D 90년경에 요한 1.2.3서를 

    기록하였고 A.D 95년에는 밧모섬에

    유배되어 요한 계시록을 기록 하였습니다. 

     

     

    도미니안 황제의 핍박으로 밧모섬에서

    1년을 지낸 후 넬바 황제 때에 에베소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A.D 96) 

     

     

    그는 에베소에서

    제자들을 돌보며 천수를 누리다가

    트리안 황제 때,(AD 98-117)  94세를

    끝으로 에베소에 묻혔다고 합니다. 

     

     

    3. 사도 요한의 신앙 생활의 특징

     

     

    어부였던 베드로의 갈대같은 마음을 

    반석같은 사도로 변화시켜 주신

    분은 예수님 이셨습니다.

     

     

    마찬 가지로 

    '우뢰와 같은 과격한 젊은이를 

    사랑의 사도로 바꾸게 하신 것' 

    예수님의 특별한 보살핌 때문 이었습니다.

     

     

    주님의 자상하신 사랑은 볼품 없는 

    나를 오늘도 믿음과 사랑의 귀한

    자녀가 되도록 돌봐주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원하는 대로 속히 변화되어 

    지지 않는 것에 실망과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 사도 요한의 삶을 통하여 

    어떻게 그분은 자신을 변화

    시킬 수가 있었는지

     

     

    그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우리의 

    삶에도 적용함으로 주님을 닮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도록 노력 하십시다. 

     

     

    1) 사도 요한은 차석의 위치를 

    겸손하게 받아들인 사람 입니다.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가리켜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을 붙였습니다. 

    (막 3 : 17) 

     

     

    그도 그럴 것이...바로  그 이유는 

    그가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 인데다가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이른바 경쟁심이

    강한 사람 이었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도 본래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요한과 안드레가

    각자의 형제인 야고보와 베드로를 

    전도하여 왔기 때문에 

     

     

    사실상 제자 서열로는, 사도 요한 안드레 

    야고보 베드로의 순서가 되어야 

    마땅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도 요한을,

    베드로 다음에 야고보를, 

    그 다음에 부르시며 다녔습니다. 

     

     

    이에 요한은 어머니 살로메를 통하여,

    주님의 나라에 자신과 형을 좌 우편 자리에

    임명을 하도록 주님께 부탁 드리게 

    하였습니다. (마 20 : 21) 

     

     

    이때 예수님은 사도 요한과 

    제자들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느니라.’ 

    (마 20 : 26) 

     

     

    (1) 예수님은 제자들이 지배자 보다 

    지도자의 마음을 갖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지배자는 자리를 원하는 사람으로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는 마음을 

    가진 자인 반면에 

     

     

    지도자는 역할을 원하는 사람으로

    전체의 뜻을 이루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 입니다.

     

     

    섬기는 자란 마지막 꼴지가 되는 자를 

    의미 하는 것이 아니라, 차석의 위치에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위치상의 끝이 아니라섬기기에 

    가장 어려운 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 나라에서의 위치는 그분께서

    직접 정하는 것으로 순종함을

    말씀하신 것 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 부활 후 

    디베랴 바닷가 에서 상봉시에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일 것'을 당부하는 것으로 기꺼이

    차석의 위치를 감수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행전에서 베드로와 함께 

    성전에 기도하러 갈 시에, 미문 앞 

    앉은 뱅이를 보고

     

     

     베드로가 나서서 손을 잡고

    일으킬 때에 기꺼이 수종드는

    역할을 하였던 것입니다. 

     

     

    하급자의 위치 보다도

    차석 자의 위치가 더 어렵습니다. 

     

     

    이는 그 자리가 제일 섬기기 

    어려운 자리이기 때문이요, 

     

     

    그 것은 자신의 자존심을 포기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겸손을 갖출 수가

    있기 때문 입니다. 

     

     

    2) 사도 요한은 봉양의 위치를 기꺼이 

    받아들인 사람 입니다. (요 19 : 26-27) 

     

     

    요한은 태어날 때 부터 차남으로 태어 났고

    부잣집 (선주집) 아들이라 원채 윗 사람을

    수발 드는 것을 해 보지 못한 사람 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봉양해 줄 것을 

    부탁 받게 되었습니다. 

     

     

    마리아 에게는 

    친 아들 딸들이 여러명 있었는데도 

    예수님이 자신에게 맡기신 것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일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리아를 잘 맡아서 

    그녀가 고령(90세)으로 돌아가실 때 까지 

    수 십년간을 정성껏 보살펴 드렸습니다.

     

     

    사랑의 사도로 부름받게된 -'요한' 

    사랑의 출처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입니다. 

     

     

    자기 기준의 사랑은 서로 좋은 것

    유익한 것을 주고 받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열심히 사랑으로 섬기면

    좋은 자리와 댓가가 돌아올 것 

    이라는 것을 그는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정작 주신 것은 

    자신에게는 무거운 짐이자 사역의 

    지장을 주는 부담 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목적을 위하여 

    원하는 것을 주기 보다는 

     

     

    주님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그것도 자신의 제일 소중한 것으로, 

    주기 원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자신의 부모인

    어머니를 맡기신 것이 아니라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랑의 대상을 자기에게 넘겨준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남에게 주어보지 못한 요한은

    그것이 자기에게 주어질 때 

     

     

    사랑으로 받기 보다는, 용도로 여기는

    수준 밖에 안  되었습니다.

     

     

    사랑을 깨달으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가게 됩니다. 

     

     

    의지로 가기 보다 감동으로 

    가기 때문에 평안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본심을 느낀 요한은 

    의무로 가지 않고 감사의 요건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의 영성이 뛰어나고, 

    다른 복음서에 비해 요한 복음이 

    신성의 깊이와 성령의 속성을

    더욱 자세히 진술한 것은 

     

     

    그가 사랑의 깊이를 터득했기

    때문일 것 입니다.

     

     

    즉, 사랑은 성령님을 제일 잘 이해하는 

    능력이자 모셔들일 수 있는 최적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3) 사도 요한은 유배의 고개를 

    순종으로 넘은 사람 입니다. (계 1 : 9) 

     

     

    사도 요한은 순교하지 않고 오래 살았다고

    다른 사람들보다 편안한 생활을

    한 것은 아닙니다.

     

     

    전승에 의하면 말년에 끓는 기름이 담긴 

    큰 솥에 던져졌으나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고, 

    또한 독을 마셨으나 해도 당하지 않은채

    나중엔 결국 ‘-밧모섬'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뙤약 볕에서 돌을 다듬는 그의 노구는

    매우 지치고 힘든 가운데 있었습니다.

     

     

    요한은 

    이미 자신의 생명을 주님을 위해

    바칠 것을 각오한 사람입니다.

     

     

    그는 수 없이 주님께 고백 했습니다.

     

     

    "주여 나의 모든 것을 다 가져 가셨는데

    왜 목슴은 가져 가시지 않습니까?’

     

     

    마리아의 봉양도 이미 끝났고 

    -'에베소' 감독도 넘겨 주었고 자신은 

    오직 주님께로 가고 싶은데 이 늙은 나이에

    유배 생활 보다는 차라리 순교를 허락 하시지

    왜 이 기간을 허락 하십니까?" 

     

     

    그때 요한은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요한은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다 드리면

    자신의 삶은 다 끝난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모든 것을 받고 

    싶어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에게 자신의 영광을

    더 주기 위하여 그를 밧모섬으로 부르신 것 입니다.

     

     

    도저히 인간이 그런 영광을 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 인데도 불구하고 주님은 주시고 싶어 하십니다.

     

    이 땅에서는 가장 소중한 자신의 어머니를 맡기셨고

    하늘나라에서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비밀을 

    요한에게 맡기셨던 것입니다. 

     

     

    이로써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자가 되었고 드디어 

    사랑의 사도가 된 것 입니다.

     

     

    사랑은 맡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되 돌아와 시작하는 것이라고

    깨달은 것 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다시 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사도 요한과 같이 매일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를 부릅시다. 

     

     

    -'마라나타'는 주님을 진정

    사랑하는 표현이기 때문 입니다. 

     

     

     

     

    - 글맺음 -

     

     

     

     

    2009/01/02

     

     

    / By Paul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