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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의 발자취1 / 앤의신앙일지
    신앙씨리즈 2021. 1. 6. 08:28

     

    New Zealand / West Side                       Moru

     

     

     

     

    신앙의 발자취1

    / 앤의신앙일지

     

     

     

     

    / By Priscilla

     

     

     

    1993/09/21(화)  

     

     

     

    1978년에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 때 부터 지금까지 15년간을

    시부모님을 모셔왔다.

     

     

    내가 시집 오기 전 부터 

    시어머님께서는 편찮으셨고...

    하루종일 거의 기동을 못 하셨다.

     

     

    시아버님께서는 항상 시어머니의 

    곁을 지키며 시모에게 짜중 한번 

    내시지 않고

     

     

    정성을 대해   

    한결같은 애정으로 살뜰히 

    보살펴 주셨다.

     

     

    그리고 시부모님 곁에서 

    나의 주된 일은 두 분께서 드실 

    식사를 장만하는 것이었다.

     

     

    대학 졸업 후에 교사로의 첫 임지가 

    성남시 성일 중. 고등학교 였다.

     

     

    교편을 잡고 4년이 지나던 해에, 

    내 나이 꽃과 같은 방년 26세 때.

     

     

    내 생애 처음 경험하는...

    어색하고 생경한 맞선 자리에서 

    그를 처음으로 대면하여 만났다. 

     

     

    그리고 나는 시모가 병환 중에 

    계시기에 급작스런 상황에 

    밀려 걷잡을 수도 없이 

     

     

    초 고속으로 3개월 만에 

    그와 약혼을 했고, 6개월 만에 

    부랴부랴 결혼을 하였다.

     

     

    더우기 시부모님을 모시기 위해서 

    그간 4년간 몸 담았었던 교편직을 

    부득불 내려 놓아야만 했다.

     

     

    그후 가정에 묻혀 대가족 

    살림을 하는 여염집의 여인과 

    같은 평범한 삶을 살았다.

     

     

    아이 둘을 낳아 기르고, 

    성장하는 것을 보노라면 

     

     

    세월은 쏘아놓은 화살 만큼이나 

    빠르기도 하다.

     

     

     

    나는 때로 편찮으신 시어머니의 

    등 뒤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가족 공동체' 안에서...

    맏 며느리의 역할을 

    잘 감당하기엔 나는 아무래도 

    가당치 않다고!

     

     

    더우기

    시모가 분초마다 힘겹게 겪는 

    -극한 통증에서 오는 절망, 탄식, 고통, 

    슬픔...등이 한차례씩 밀려 오면

     

     

    시모는...

    그 아픔으로 인해 절규하며 

    흐느껴 우셨다. 

     

     

    나는 그시모의 처절한 외 마침과 

    통곡 소리를 들으며 그 중 

     

     

    어느 것 하나도 내가 해결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에...

     

     

    나는 홀로 숱한 

    가슴 앓이를 했다.

     

     

    13년간 긴 기간동안 동거동락 

    했었던 시어머님은 결국 2년 전인

     1991년에 마침내 소천 하셨다.

     

     

    그러나,

    시모와 함께 했던 13년 동안 

    나는 날이면 날마다 그분 곁에서 

     

     

    그분의 심령 속 깊은 얹저리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얼룩진 고통의 파편들을 

    지속적으로 보아 왔다.

     

     

     

    그 고통의 시간을 삶으로 

    함께한 나는 피 할 수도 없이 

    고스란히 시모의 애한을 부득불 

    같이 공유 해야만 했다.

     

     

    인생을 살면서...

    이제 까지 단 한번도 

    경험치 못했던  나로서는

     

     

    그것이 무엇보다 내게 있어 

    가장 크나 큰 고통이었다!

     

     

    시모는 그 오랜 기간 동안 침대의 

    한 편에 온 종일 모로 누워 계셨다. 

     

     

    당신이 원하는대로 마음 껏 

    움직이지 못 하셨다.

     

     

    또 병명조차 확인이 안된 채로!

    그저 속절 없이 오랜 기간동안 

    병석에 누워 시달려야 했다.

     

     

    거의 매일이다 시피, 

    시모가 온몸의 뼈가 아파 

    그 통증을 시아버님께 호소

    할 때면... 

     

     

    나는 두분의 곁에서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그저 속수무책으로 애태우며 

    앉아 있기만 했던 나의 마음은 

    너무나 저미고 시리도록 아팠다.

     

     

    시모에 대한 시부의 사랑은

    한결 같으셨다.

     

     

    기름이 다 빠진 시모의 

    쇠약한 육신을 주무르며 

    지극 정성으로 시중 드셨다.

     

     

    욕창이 돋지 않도록 시부를 도와 함께 

    시모를 돌아눕게 해드릴 그 때면...

     

     

    그녀는 안간 힘을 쓰며 

    큰 소리로 절규했다.

     

     

    마치 "벼랑에서 급히 

    떨어 지는 것" 같다고 하셨다. 

     

     

    "수천 길 아득한 황천 나락에 

    끝도 없이 밑으로 떨어 지는 

    것만 같다" 고도 하셨다. 

     

     

    심지어는... 

    "음부에로 떠 밀려 내려 

    가는 것 같다" 하셨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볼 때 마다 

    나는 홀로 조용히 숨죽여 

    눈물을 흘리곤 했다.

     

     

    “눈물을 흘리며 고통 받으시는 

    당신보다...외려 지켜보는 

    내가 더 힘들어요.” 라고!

     

     

    나의 감정을 제대로 한번 

    표출하지도 못한 채로! 

     

     

    이로인해...

    나는 '탈진 (burn-out)' 상태에

    이르러 그만 질식 할 것만 같았다!

     

     

     

     

     

    - 계속 -

     

     

     

     

     

     

     

    1993/09/21(화)  

     

     

     

    / By Prisc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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